엄마가 조용히 무너지는 시간,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집에서
밤 11시 47분
주방 조명만 켜져 있는 집.
머그잔에 물이 절반쯤 남았고,
식탁 너머엔 엄마의 그림자만 길게 앉아 있었다.
누군가는 다정한 걱정이라 했고,
누군가는 과한 통제라 했다.
하지만 이 밤,
엄마는 아무 말 없이 스마트폰 배터리를 세 번이나 확인했다.
장면 하나. 아들 메시지 '읽음' 표시 없음
[23:12]
“오늘 친구랑 어땠어?”
메시지는 읽히지 않았다.
엄마는 화면을 꺼두고 다시 켜길 반복했다.
대답은 없고, 마음만 뜨거워졌다.
아들이 친구와 싸운 걸까?
급식은 또 입에 안 맞았나?
학교 앞에서 무슨 일이라도?
전혀 근거 없는 ‘가능성의 목록’이 머릿속에 자라기 시작했다.
장면 둘. 남편의 퇴근 예정 시간 40분 초과
[23:27]
거실 시계가 똑딱인다.
“오늘 회식 있다고 했던가…?”
기억이 나지 않았다.
잠깐 통화할까 싶었지만,
다시 ‘연결 중’만 반복되는 상황을 상상했다.
그저 입맛을 다시며
불 꺼진 복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다.
장면 셋. 엄마가 기침 두 번, 그리고 다시 조용
[23:38]
엄마 방에서 짧은 기침 소리.
"혹시 폐렴은 아니겠지?”
“작년 감기보다 기침이 오래가네…”
스스로도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 웃으며,
그럼에도 불구하고, 인터넷 검색창을 켰다.
시간은 지나고,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
[00:03]
아들이 “잘 자요”라고 답장을 보냈고,
남편은 “아래서 올라가는 중”이라며 문자를 보냈고,
엄마는 화장실에서 물 한 컵 마시고 돌아왔다.
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.
하지만 그 1시간 동안
엄마는 수백 가지 상상 속을 왕복했다.
걱정은 예언이 아니라 애착의 그림자였다
“나는 인생에서 수많은 걱정을 했다.
그중 대부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.”
– 마크 트웨인
걱정은 엄마가 감당할 수 없는 ‘거리’ 속에서 시작됐다.
아이의 마음, 남편의 하루, 엄마의 몸 안,
어느 것 하나 완전히 알 수 없기에
‘생기지 않은 일’을 미리 살아보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.
엄마는 생각했다, 이제 이 마음을 다르게 살아보자
무엇을 걱정했는가 실제 상황 다음에 할 일
아들 답장이 없음 | 늦게까지 공부 중 | ‘늦게 답해도 괜찮다’는 말 전하기 |
남편 퇴근 늦음 | 회사 회식 후 귀가 중 | 매주 회식일 체크해보기 |
엄마 기침 | 건조한 공기 탓 | 가습기 점검 & 병원 예약 |
걱정을 지우진 않기로 했다.
대신 걱정을 쓸모 있게 바꿔보기로 했다.
그리고 오늘, 엄마가 자신에게 남긴 메모
“지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.
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은 오늘도,
잘 살아 있다.”